yes매일경제2026. 4. 8. PM 11:26

이란100년, 투키디데스적(的) 비극 [김세형칼럼]

20세기 선진국될 기회 2번팔레비, 호메이니 잘못에 망쳐韓 싱가포르 앞서가는동안 후퇴정치지도자 선택 중요성 일깨워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연합뉴스]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한 달여 폭격으로 원유 정제 능력, 시설파괴 등으로 300조원 이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채텀하우스는 분석했다. 미국과의 최종 핵협상에서 강자의 요구에 순응했다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있었다. 철저히 파괴되는 이란의 참변을 보면서 정치 지도자의 선택과 국민의 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서리치게 다가온다.근세사를 보면 1979년 중국 덩샤오핑의 등장과 이란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로 교체한 시기는 꼭 같다. 그 후 중국은 세계2위로 발전했으나 이란은 호메이니-하메이니의 신정정치로 후퇴를 거듭했다.한국은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60년 만에 선진국에 올랐으며 싱가포르는 1959년 리콴유 집권 후 소득 10만달러 국가로 최정점에도달했다. 이란은 공자,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BC 4세기만 해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국이 세계 최강이었다.최근 100년 동안 이란에 중요한 두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첫 번째는 1925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레자 칸의 팔레비 왕조 때였다. 그 이전왕조(카자르)가 러시아에 영토를 숱하게 빼앗긴 것을 보고 분연히 일어섰다.2500년 전 페르시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서구식 경제 개발을 밀어붙이고 여성들의 이슬람 히잡 복장도 폐지했다. 국호도 ‘아리안의 땅’이라는이란으로 바꿨다. 남북을 잇는 철도를 한국보다 훨씬 먼저 깔았다.그러나 레자 칸은 중대한 선택의 실수를 저질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몰래 독일 히틀러 편을 들었던 그는 영국·러시아에 의해 왕좌에서끌어내려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도망가 죽었다.그리고 20대 초반의 아들 레자 샤가 옹립됐다. 왕좌를 이어받은 샤는 테헤란대학을 설립하는 개혁을 이어갔지만 이슬람 성직자들의 토지를 몰수하고부패정치로 실정을 했다. 미군·이스라엘군의 힘을 빌려 치안을 유지했지만 3년간 시위 끝에 결국 팔레비 왕조는 붕괴됐다.이란 국민은 1979년 국민투표에서 98%의 지지로 호메이니를 선택했다. 그리고 11월 이란 미국대사관을 점령하여 444일간 미국에 모욕을줬다.이 무렵 덩샤오핑은 미국, 일본, 싱가포르를 시찰하며 자본주의를 중국 경제에 이식시켰다. 10년 후쯤 동독이 무너지고 소련도 무너져 미국은1극으로 치달았다.호메이니 정권도 이란 역사 속 페르시아나 압바스왕처럼 관용주의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덩샤오핑의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란은 인구9000만명에 석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로 최강대국에 오를 기반은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혁명 당시 한국과국내총생산(GDP)이 같았으나 지금은 4분의 1에도 미달한다.펠로폰네소스 전쟁사(BC 2340)를 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강대국은 규칙을 정하고 약소국은 그것을 감내하는(suffer)하는것”이라고 국제질서를 정의했다. 이란은 세계 최강 미국을 ‘대(大)악마’로 규정하고, 헤즈볼라, 후티반군, 하마스, 시리아민병대를 ‘저항의축’으로 결성해 이스라엘 말살을 기도했다. 중국, 러시아, 이란은 합동 군사훈련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신국방전략(NDS)에서 세 나라를 적으로 규정하는 백서를 발표했다.이란전쟁 전 3차 핵협상 때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쿠슈너를 보내 “핵농축을 10년간 동결하라”고 하자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그것은주권사항”이라며 고함치고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투키데디스 법칙을 거역한 하메네이는 폭살됐고 이란은 석기시대로 갈 판국이다. AI 혁명 시대에한국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넘보는 것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가로막아 준 미국의 편에 선 때문이다.[김세형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