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국민일보2026. 4. 19. PM 3:36

[글로벌 포커스] 중견국 외교의 새로운 도전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중견국 외교는 냉전이 끝난 뒤 캐나다·호주 등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보완하고, 규범 형성에 앞장서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난20여년간 우리나라 역시 증대된 국력을 바탕으로 중견국으로서 새로운 규범 창출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고자 했다. 다만 북한핵·미사일 위협 억제와 한반도 안정이라는 생존 의제가 최우선이었기에 중견국 외교는 대체로 부차적 과제로 취급됐다.2010년대 중반 이후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우리의 중견국 외교 성격에도 변화가 생겼다. 국제적 위상 제고를 넘어 다변화와 연대를 통해외교적 충격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사드 보복 이후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소산이었다.윤석열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호응해 미국이 주도하는 소다자 협의체와의 연계를 모색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미국 주도 자유주의 질서의틀을 전제로 전개됐다.트럼프 2.0은 이러한 전제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이제 자유주의 질서를 가꾸는 ‘정원사’가 아니라 동맹국에조차 노골적 거래를 강요하는 약탈적패권국으로 인식된다. 그동안 한국 외교가 당연한 전제로 삼아온 질서의 토대가 미국 스스로에 의해 훼손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이러한 가운데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우리는 전환이 아니라 단절의 한복판에 있으며 중견국들이 함께 행동하지않으면 테이블이 아니라 메뉴에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초강대국이 공급망과 관세를 무기화하는 현실 속에서 중견국들이 연대하지 않고서는패권국과의 개별 협상에서 늘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견국 연대의 호소는 약화하는 규칙 기반 질서를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하다.우리도 중견국 연대의 필요성과 대의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처지가 캐나다와 똑같지는 않다. 북한의 핵 위협 억제 수단이사실상 한·미동맹에 의존하고 있고, 수출의 20%를 미국 시장에 기대는 경제 구조는 한국을 미국의 관세·규제 정책 변화에 취약하게 만든다.미국은 한국의 안보와 시장 의존을 동시에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데,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는 제한적이다. 그 결과 미국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인식과 여전히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깊은 딜레마가 발생한다.이런 가운데 한국이 대미 의존을 완화하고 외교적 자율성을 넓혀야 한다는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자강을 통한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방위력과 산업 경쟁력, 공급망 관리 능력을 키우는 일은 거래적 동맹을 감내하는 최소 조건이다. 둘째, 외교 다변화와중견국 연대를 실질적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이재명정부는 유럽·아세안·인도·중남미 등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등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어느 정도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중견국 연대 형성을 위한 능동적 움직임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항행 안전을 위한국제연대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우리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 기대에 비춰보면 첫걸음일 뿐이다.한국의 중견국 외교는 자유주의 질서 속 위상 제고 전략에서, 흔들리는 질서 속에서의 생존 전략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다만 여전히 중견국연대의 전략과 실행은 미완성이다. 질서 전환기 한국 외교의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이며 필요한 것은 대미 의존의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자율성을넓히려는 창의적 구상과 대담한 실천이다.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