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중앙SUNDAY•2026. 5. 1. PM 3:29
[ON 선데이] 트럼프의 전략적 오판, 할리스 강을 건너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올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전쟁을 개시했을 때 각국의 외교전문가들은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전쟁 목표는 불확실했고 외교적 카드 대신 전쟁을선택한 이유는 모호했다. 뉴욕타임스의 4월 7일 자 특종기사 ‘어떻게 트럼프는 미국을 이란과의 전쟁에 몰아넣었나’는 그런 의문에 대한 명쾌한설명을 제공했다. 전쟁 결정의 배후에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있었다.미국, 강한 군사력 믿고 이란 침공자기를 과신하고 상대는 과소평가종전협상의 미래도 예측불허 상황인간의 오만이 판단력 흐리게 해네타냐후는 전쟁 직전 워싱턴에 가서 ‘바로 지금’이 이란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트럼프를 설득했다. 국방장관을 제외한 모든 트럼프의 참모들은반대했지만 트럼프는네타냐후의 손을 들어주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압도적인 화력 우위를 믿고 신속한 승전을 확신했다. 베네수엘라에서의 성공은 그확신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예측과 달리, 전쟁 개시 후 이란 내부의 국민 봉기와 정권교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란은 상처를 입었으나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확신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흡사한 전략적 오판이었다.두 전쟁에는 ‘자국의 힘에 대한 과신’과 ‘상대방의 저항 의지에 대한 과소평가’라는 공통점이 있다.전략적 오판은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는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강국 리디아(현재 튀르키예 서부)가페르시아(현재의 이란)를 침공한 사례가 등장한다. 리디아의 크로이소스왕은 당시 서구와 근동에서 가장 막강한 부와 권력을 소유했다. 하지만동쪽에서 신흥강국 페르시아가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자, 위기를 느낀 크로이소스는 선제공격을 감행한다. 왕은 전쟁에 앞서 당시 관습대로 델포이의신탁에 물었다. “내가 페르시아를 공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신탁의 예언은 이랬다. ‘강(할리스)을 건너면 대제국이 멸망할 것이다.’크로이소스는 이 ‘대제국’이 당연히 페르시아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신탁이 예언한 대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제국, 리디아였다. 리디아군은 페르시아와의 국경선이었던 할리스 강을 건넜다. 양국 군대는 격렬히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오자크로이소스는 당시 관례에 따라 전쟁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하고, 수도로 돌아와 용병들을 해산시켰다. 다음 해 봄에 다시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페르시아 군대는 겨울 휴전을 무시하고 리디아를 공격했다. 리디아의 말들이 낙타의 생소한 냄새에 겁을 먹고 도망치는 바람에, 리디아의 자랑이었던기병대는 페르시아에 무너졌다. 결국 대제국 리디아는 멸망했다.크로이소스가 모호한 델포이의 신탁을 믿고 할리스 강을 건넜던 것처럼, 트럼프는 네타냐후라는 위험한 사제가 던진 매혹적인 신탁에 홀려 현대판할리스 강을 건넌 것이다. 미국의 무력행사는 외교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핵 억제와 이란과의 관계개선 기회를 닫아버렸다. 과거 미국의 군사력은도덕적 권위를 얻음으로써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정당성을 잃은 전쟁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편에 서지 않았다. 『역사』에서헤로도토스가 본 페르시아는 척박한 환경에서 단련된 끈질긴 민족이었다. 현재의 이란은 미국에 강경한 혁명수비대의 장군들이 장악하고 있어 휴전협상의미래도 예측불허다.전략적 오판의 결과는 미국외교의 고립에 그치지 않는다.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는 에너지 공급망을 막아 세계적 경제위기를 가져왔다. 항행 자유는 다수국가들에 사활적인 이익이라, 미국 같은강대국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한국을 포함, 49개국 정상이 참가한 영·프 주도의 호르무즈해협 ‘항행자유’를 위한 다자간 정상회의는 그래서 중요했다. 이 회의는 각국이 당장 파병하는 대신 전후 항행 자유 보장을 위한 다국적 연대를 추진하고있다. 이는 트럼프의 파병 요청에 고심하던 우리 정부에게도 좋은 대안이다. 종전 후 다국적군의 일환이라면 한국군의 파병도 가능하다.헤로도토스는 전쟁의 승패가 신의 변덕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인간의 ‘휴브리스(오만)’였다. 도를넘는 인간의 오만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크로이소스가 할리스 강을 건넌 실수는 2500년 후 다시 미국과 이란 간의갈등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인간의 오만이 불러오는 예측불가능한 반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