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조선일보2026. 5. 14. PM 3:58

베이징 담판 첫날, 빅딜은 없었다

美中, 이란 전쟁·무역 현안 논의공동성명 등 성과물 도출 못해시진핑 “대만 잘못 처리 땐 충돌”백악관 “호르무즈 문제 등 합의”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만난 모습. /AP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와 글로벌 현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의 대면회담은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부산에서 열린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부산 회담이 무역 갈등을 둘러싼‘탐색전’ 성격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이란 전쟁, 대만 문제, 무역 현안 등 글로벌 어젠다와 민감한 양국 이슈를 모두 다루는 ‘세기의 담판’으로주목받았다. 하지만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135분간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공동성명 등 성과물을 도출하지 못했고 핵심 쟁점에서 뚜렷한 합의도내놓지 못했다. 기대됐던 ‘빅 딜’은 없었던 것이다.양측이 핵심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각자 내놓은 정상회담 발표문에서도 확인된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를 잘못처리하면 양국은 충돌해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지만, 이 내용은 미측발표에서는 빠졌다. 또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양측이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된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는 것과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는 데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중국측은 “중동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했다.다만 양국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2017년 11월 이후 약 9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질 것”이라며 “우리는 환상적인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중·미관계라는 큰 배의 항로를 잘 이끌고 방향타를 잘 잡아 올해가 중·미 관계의 과거를 잇고 미래를 여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해가 되도록 만들겠다”고했다. 양국 정상은 15일에도 티타임과 업무 오찬을 통해 사실상 회담을 이어갈 예정이다.135분 담판… 美 발표엔 ‘대만’ 없고 中 발표엔 ‘호르무즈’ 빠졌다이날 미·중 정상회담 초반 모두발언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미는 적수가 아닌 동반자가 돼야 한다”며 “중·미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대국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가는 대국 지도자들이 함께 써 내려가야 할 시대의 답안”이라고 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신흥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패권국과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된다는 국제정치학 용어다. 미·중이 나란히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G2(2국)’구도를 제시하며 트럼프에게 공존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를 위해 협력 중심의 적극적 안정, 경쟁이 절제된 선의의 안정 등을 골자로 하는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관계’를 제안했다. 시 주석은 “이 관계가 향후 3년 이상 중미 관계에 전략적 지침을 제공할 것”이라고 부연했다.트럼프 대통령은 평소의 거친 화법을 자제하고 시 주석과의 친분을 부각했다. 그는 “시 주석은 위대한 지도자”라며 “나와 시 주석은 역대 미·중정상 중 가장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고 했다. 이어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역사상 최고의 미·중 관계를 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마련된 미·중 정상회담장에서 양국 대표단이 마주 앉아 대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을 중심으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 등 핵심 참모들이 배석했다. 분홍색과 흰색 철쭉이 섞인 테이블 사이 장식은조화를 상징한다는 중화권 매체의 해석이 나왔다. /로이터 연합뉴스그래픽=김성규中, 회담 종료전 習의 ‘대만발언’ 공개중국은 대만 문제에 대해선 확실한 ‘레드 라인’을 그었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잘 처리하면 양국관계는 총체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고,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부딪치거나 심지어 충돌해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했다. 미·중 무력충돌을 직접적으로 ‘경고’한 것으로, 그간 중국의 대만 문제 발언들에 비해 한층 수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대만 독립’과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며 “미국은 반드시 신중에 신중을 기해 대만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도 했다.시 주석의 대만 관련 발언은 취재진이 퇴장한 후에 나왔지만, 중국은 정상회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화통신을 통해 이를 공개했다. 미리 준비한각본에 따라 발언을 하고 적극 홍보한 셈이다. 전날 이례적으로 주미중국대사관이 ‘대만 문제’를 ‘4대 레드라인’ 중 하나로 지목한 글을소셜미디어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날 발언은 미국이 지난해 12월 대만에 11억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하고 14억달러규모의 추가 무기 판매를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한 반발로도 해석됐다.하지만 백악관이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한 보도자료에는 이같은 대만 관련 내용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 트럼프는 취재진에게 회담 결과에 대해“훌륭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지만, 대만 문제도 논의했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이란전 관련은 원론적 합의만이란전과 관련해 미국은 양 정상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 ‘해협 통행료 부과 시도 반대’ ‘이란 핵무기 확보 반대’에 동의했다고 밝혔다.백악관은 “양측은 에너지의 자유로운 공급을 지원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된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면서 “(시 주석이) 향후중국의 해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원유를 더 많이 구입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고 했다.다만 이 같은 원론적인 공감대 외에, 중국측이 호르무즈 개방 등을 위해 실질적·구체적 역할을 약속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도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않았다. 정상회담 직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이 이란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못한 것으로 풀이된다.중국 발표에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신화통신의 회담 결과보도에는 “양국 정상이 ‘중동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돼있다.중국 외교에서 ‘의견 교환’이라는 표현은 통상 서로 입장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을 때 사용한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중동’은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주제중 하나”라며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일관적이고 명확하다”고만 했다.북핵 문제는 후순위 밀린 듯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위기,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양측은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없어,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문제는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7년 11월 트럼프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와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당시 정상회담에서는 ‘북한비핵화’ 의지를 양측이 재확인하고 협력 강화를 약속했었다.☞투키디데스의 함정기존 강대국이 신흥국의 부상을 견제하다가 전쟁의 함정에 빠지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조건을 가리키는 용어.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스파르타가 점점 힘을 키우는 아테네를 경계한 끝에 전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한 데 착안해 하버드대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명명했다.